스님 법문
-
[일요법회]7월 2일 일요가족법회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2-07-02
한 달이 지났습니다. 여러분들 한 달 만에 또 만나 뵙게 됐습니다. 합장해 보실까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오늘 법회는 여러분들께 <복 짓는 생활, 공덕을 짓는 생활>에 대해서 이번 달, 다음 달 두 달에 걸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복을 짓는 그런 생활, 불교는 모든 인류가,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축생이든, 사람이든, 또 어린이건, 아이건 다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 마음과 행동을 배우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도록, 마음에 걸림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무 걸림이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복이 제대로 지어지고 또 내 행동이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착한 습관을 가지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또 고요해집니다. 우리가 물이 고요하게 맑으면 세상이 다 비치게 되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이 맑고 고요해질 수 있냐. 자기가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또 우리 어른들은 자기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하고, 그리고 내 마음을 살피고, 또 우리 스님들은 각자 소임을 대중을 위해서 열심히 살다가 보면 여러 생각, 좋다는 생각, 싫다는 생각, -그거를 우리가 생각이라 그러고 또는 견해라 그럽니다.- 그 견해가 지혜로 바뀌는 겁니다. 지혜는 한마음이 되는 걸 우리는 지혜라고 그럽니다. 한마음, 여러 생각이 한 생각으로 돌려지는 거, 그거는 각자 맡은 업무를 열심히, 자기 직업을 열심히 했을 때 그런 마음, 에너지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에너지라는 말은 존재를 있게 하는 겁니다. 내 몸이 있는 건 내 몸에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존재하지, 에너지가 없으면 어떻게 돼요? 온기가 없으면 우리는 시체에요. 그래서 불교는 항상 착한 습관을 가지는 것, -그 착한 습관을 우리는 선근(善根)이라고 해요. 성근, 착할 성 자, 뿌리 근자,- 그걸 익히게 됐고, 두 번째는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데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건 다른 사람이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밖에 없어요. 내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 내 자신이 지혜로워지는 거예요. 다 보이고 비쳐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행동을 할 수 있고, 그거를 사람들에게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 꿈이 생기게 돼요. 자비롭게 그 마음을 쓰는 그런 종교가 우리 불교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니르바나, 해탈이에요. 니르바나, 내 마음에 아무런 번민이 없어 끝도 없이, 그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이 우리 원이 돌아가듯. 원은 점에서 시작이 됩니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하나의 원이 되는 거거든요. 원은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걸 우리는 해탈이라 그러고 니르바나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세계에까지 우리가 갈 수 있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지금 내가 먹는 마음이 너무 중요해요. 우리가 음식도 먹는다,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돼요. ‘나의 에너지가 생기고 나의 몸이 되고 나의 인격이 된다.’라고 저희 회주스님이 늘 사찰 음식 강의를 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내가 먹은 음식은 나의 몸과 나의 인격이 되고, 내가 먹는 마음은 곧 나의 미래를 만들더라 이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과 응보를, 내가 콩을 심으면 분명히 콩이 나고, 내가 나쁜 마음을 지금 가지게 되면 미래는 나쁜 걸 거둬들이게 돼 있어요. 내가 지금 좋은 마음을, 스님 법문을 듣고 좋은 마음을 심어주는 순간, 하나를 심었는데 미래에는 100개, 200개, 1천 개 이렇게 얻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 <인과응보>가 분명하다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믿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은 착한 행동을 해야 되겠죠. 그러려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되겠죠. 지금 여기 함월당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 어린이들은요, 수생을 닦았어요. 여러 생에 많은 좋은 인연을 닦아서 좋은 부모를 만나서 여기까지 인도를 해줬는데, 지금서부터 이제 스님이 길러줘야 돼요. 이 아이들이 꿈을 발견하고,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거는 믿음을 이 아이들에게 인과가 분명하다라는 것을 믿어주고,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이 발생이 되기 때문에, 내가 항상 바른 마음, 착한 마음, 그거를 부처님 가르침에서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불교는 공덕을 쌓는 종교다. 공덕이란 말을 제가 사전에서 한번 찾아봤어요. 착한 일을 많이 해가지고 덕을 많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이게 공덕(功德)이라는 거예요. 공 공, 큰 덕자.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꼭 지켜야 할 도덕이다. 사전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네요. 그래서 항상 절에서는 공덕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공덕비도 만들고. 제가 아는 분이 “스님. 인생은 공덕 쌓다가 죽는 게 가장 현명한 거 아니에요?” 이런 말씀을 제게 하더라고요. 그렇지요. 그 사람이 그렇게 신심이 가득하지는 않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일단 개념은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는 공덕을 쌓고 있나 안 쌓고 있나.’ 그거를 한번 생각하고, 우리 어린이들은 가치관을 거기에 두고, 공덕을 쌓는 습관을 매일 기르는 거, 이거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부처님도 그렇게 하셔서 부처님이 되시고, 많은 선사 스님들도 그렇게 하셨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본으로 믿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거예요. 믿음이 확실해야 돼요.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과일을 따먹기 위해서 나무를 땅에 심는 거와 같다고 얘기를 했죠. 과일을 따 먹으려면 나무를 심어야 되는데, 종이에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백날이 지나도 이 과일을 따먹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때 이렇게 절에 와서 불교 활동을 했는데, 이 어린이들은 지금 어린이인데 여기 와서 벌써 불교 활동을 하고 이 믿음을 심고 있는 거예요. 이 믿음이 잘 심어지도록 해주는 건 스님들과 부모님들이에요. 그래서 흔들림이 없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일러주는 거, 그러면 어린이들은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돼요. 분명히. 왜냐하면 지혜로운 길을 스님들이 가라는 대로, 부모님이 가라는 대로 갈 거기 때문에. 근데 부모님이 좀 문제가 또 있을 수 있어요. 욕심을 가지고 아이를 대했을 때는 그 아이의 인생을 다 망가뜨려 버리는 거예요. 왜? 욕심을 가지고 부모님이 아이에게 얘기를 하면 아이가 말을 거부해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마음이 맑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그 욕심스러운 말은 부담스러워서 부모를 계속 피해 다닙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그러면 아이를 진정한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불심으로, 부처님 마음으로, -때가 없는 부처님 마음은 무구(無垢)라고 그랬어요.- 때가 없는 마음으로, 지혜롭고 자비롭게 그 말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해줬을 때는, 아이들이 마음이 맑기 때문에 어머니를 존경하고 아버지를 존경하는 그런 효심이 일어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공부도 잘하고 상도 타오고 자기 꿈을 발견하고 꿈을 키우게 되는 겁니다. 어린이들 알아들었어요? 박수 한번 쳐볼까요? 바로 이거예요. 그 말을 알아듣고 공감하고 그거를 내 습관으로 가져왔을 때 우리는 씨앗이 벌써 심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인간이 시간을 실속 있게 쓸 수 있는 그 방법, 그거는 복 짓는 생활을 하는 겁니다. 복 짓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복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기회가 주어져도, 우리가 공부 1등 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꼭 서울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성공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을 안 나와도, 대학을 안 나오고 대학 문 앞에도 안 가도 복만 있으면 그 사람은 성공하게 돼 있어요. 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나의 꿈을 성취하고 나의 꿈을 발견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게 복이라고 그랬는데, 복은 건강 복도 있고, 학복도, 공부 배우는 복도 있고 아내를 만나는 복도 있고, 또 우리가 친구를 만나는 복도 있고,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도 있고, 직장 복도 있고, 수많은 복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데 그 복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거 없어요. 왜? 그릇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져도 우리는 항상 실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럼 복이 되는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우리는 항상 원망하죠. 특히 우리 어린이들, “엄마 나 왜 세상에 낳았어? 나를 왜 낳았어요?” 어머니가 돈 달라고 해서 안 줄 때, 게임기 사달라고 했을 때 우리 어린이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그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어요. 우리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선택했어요.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선택해서 엄마 뱃속에 들어가 가지고 엄마가 너무 힘들게 배 아프게 불안하게, 더운데 배가 이렇게 불러가지고 숨도 쉬기 어렵고, 또 애기가 놀 때 너무 아팠대요. 그렇게 고생하며 애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줬는데 그러면 얼마나 고마워해야돼요. 고마워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크게 한번 말해보세요. 우리 어린이들은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부모님이 계시죠. 고마워해 줘야 돼요. 내 아이만 귀중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부모님께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분명히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 아이는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리아식에 그게 담겨 있기 때문에, 특히 어렸을 때 부모가 그렇게 하시는 거를 보면 아이는 분명히 보게 되는데, 우리가 안 되는 집안에는 가보면, 시어머니 원망하고, 친정 아버지 원망하고. 돈 많이 안 줬다고 친정 아버지한테 화내고. 그래도 아들한테 어떡하면 엄마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고 싶어가지고 몰래 몰래 건내기도 하고요. 부모님 원망하면 내가 재산을 수십억을 받아도 내가 가지지 못해요. 그릇이 깨집니다. 제일 나쁜 버릇이 부모를 원망하는 거다. 우리 어린이들은 다 알아들었죠. 부모님 원망하면 안 돼요. 그래서 오늘부터는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돼요? 합장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렇게 인사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할 사람 크게 손 들어보세요. 부모에게 잘하는 거 이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내가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 원망하는 마음이 절대 없습니다. 절대 누구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항상 복이 보물이 되어서 창고에 소복소복 쌓여요. 제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냥 소복소복 쌓이는 소리가 들려요. 진관사가 복이 쌓이는 소리가 들려요. 왜? 좋은 사람들이 제 옆에 너무 많이 계시고, 스님들이 그렇게 계시고, 우리 신도님들이 그렇게 계시고 외국분들이 그렇게 또 오시고.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복이 큰 등불이 되는 거예요. 또 복이 큰 창고가 되는 거예요. 또 복이 나의 부모님처럼 항상 나를 보호해줘요. 이해가 가지요. 공감이 되나요? 그래서 항상 나의 등불이 되고, 나의 친구가 되고, 나의 부모님처럼 복이 항상 옆에 따라다녀서 내가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주고, 시간을 주고, 또는 능력을 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복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등불이 꺼져서 깜깜해가지고 한 치의 앞을 몰라서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을 절대 가지지 말자. 어떻게 해야 된다? 늘 감사하고 모든 사람들을 고마워해야 돼요. 그렇게 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부모님께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오늘 법문을 들으시는 분들은 자식들에게 또는 아내에게 또는 남편에게 아침 인사를 어떻게 한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는데 그거는 상대에게 그렇게 하잖아요. 우리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게 뭐예요? 양치질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양치질하죠. 제일 좋은 습관이에요. 아침에 입안에 세균이 가득 고여 있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양치질을 하면 저는 거울을 보고 양치질을 하거든요. 양치질하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살았던 그 입안에 세균처럼 다 버리는 거예요, 마음의 때를. 그러면서 눈을 거울에 대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법해스님,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법해스님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를 한 스무 번 해요. 저 양치질 아침에 오래 해요. 잇몸까지 이렇게 다 잇몸을 막 하면 잇몸이 건강해지니까. 그러면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면 스스로 내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요. 그래서 제가 거울에 제 모습을 보고 너무 반가워합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에요. 양치질을 하고 그다음에 만나는 사람 누구예요? 부모님. 그럼 부모님 보고는 뭐라고 해야 되겠어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아빠가 술 잔뜩 먹고 피곤해서 안 일어나면 “아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라고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할 거죠. 약속하는 의미에서 박수 한 번 쳐볼까요? 남편.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아내.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 말이 숨 쉬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워야 돼요. 진관사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기도를 한 지 벌써 5년 정도 됐어요. 그러면 이제는 여러분들 마음속에 또 행동에서 나타나야합니다. 주지 스님은 또 언제 하는 줄 아세요? 삭발할 때도 해요. 삭발. 거울 보면서 번뇌를 다 버리면서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니까 제 얼굴이 환해지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언제 또 할 수 있을까요? 화장할 때, 눈 그릴 때도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남자분들은 면도할 때, 또 거울을 보고 헤어 스타일을 고칠 때. 항상 내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깊이 믿어야 돼요. 그렇게 믿으면 나무를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해서 거름을 덮는 거와 똑같아요. 그걸 믿고 행동을 하는 순간 큰 자량이 되는 거예요. 두 번째는 또 뭐냐. 항상 만족할 줄 알아야 돼요. 만족할 줄을 몰라요. 지금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부모님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큰 복의 그릇을 만들려면 항상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하면서 부모님 말씀을 듣고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믿어줘야 돼요. 부모님들이 욕심 사나워 가지고 자식을 믿지 않고 가만 두지 않고 너무 불편하게 해줘요. 사실 우리 어머니도 그랬어요. 나 그래서 출가를 했는지도 몰라요. “대학을 가서 어떤 사람이 되고” 매일 그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나 이렇게 출가을 해버렸으니까 좀 어머니가 섭섭하셨죠. 제게 회주스님께서 “많이 잘하고 있어” 근데 내 자신을 못 믿는 거예요. “아니에요. 부담스러워요.” 이 렇게 제가 얘기를 하거든요. 스님인 저도 저를 만족하지 못하는 거예요. 지족(知足).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가장 큰 복이다. 첫 번째는 원망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만족할 줄 안다. 항상 만족할 줄 알면 우리가 번뇌가 없어져요. 생각이 번거롭지 않아져요. 그래서 만족할 줄 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항상 현재를 산다. 지금 이순간, 아까 얘기했잖아요. 꽃이 펴서 난리인데, 오지 않는 겨울에 “눈이 오면 좋겠네요.”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그 사람은 만족할 줄도 모르고, 지금 현재의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우리 어린이들은 “엄마 왜 우리는 부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말 안 했죠?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근기가 출중해요. 지금 이 순간. 불교는 현재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100년 뒤도 현재고 바로 지금도 현재고 앞으로 뒤도 현재예요. 현재를 중요시하는 종교가 불교다. 현재 지금.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부처님 같은 마음을 쓰고, 부처님 같은 생각을 하고, 부처님 같은 행동을 하고, 부처님 눈으로 세상을 봤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자비로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여덟 가지가 있는데, 5개는 다음 달에 말씀드릴게요. 다 같이 한번 합장해보시고 허리를 반듯하게 펴보세요. 허리를 반듯하게 펴시고 눈을 살짝 감아보세요. 눈을 살짝 감고 내가 편안하게 척추를 반듯하게 해보세요. 눈을 감고 스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호흡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한 번 더 크게 들으쉬고 내쉬고. 이제 다 같이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스님이 여러분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드리고 다 같이 합송할 때는 다 같이 합송하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어.부처님의 아들 딸들이 마음의 정원 진관사 함월당에 모여 대중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배운 법문을 가슴 깊이 새겨, 복을 짓고 공덕을 짓는 습관을 익히고, 밝고 맑은 마음으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불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동안 어리석음으로 행복하지 못했던 습관은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믿고 배워, 저도 부처님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좋은 행동이 습관이 되어 꿈을 발견하고 꿈을 성취하여 인류의 밝은 등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어. 인과응보는 틀림없는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겨봅니다. 다 같이 스님이 하는 말을 눈을 감고 따라 해보겠습니다. 항상 복이 되고, 공덕이 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남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매일 부모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그리고 매일매일을 지금 이 순간 현재 이 시간 소중하게 여기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지난 과거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고, 오직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부처님처럼 부처님 마음으로 모두에게 감사하고, 부처님처럼 자비롭게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부처님처럼 말하고, 부처님처럼 행동하는 참다운 불자가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따라하시고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듣습니다. 진리에 능하고 만물에 인자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어.저희들이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서 항상 바른 마음으로 삼보를 믿고 따르며, 우리는 모두 부처님의 불성을 갖춘 존엄한 생명이며, 진정한 법의 형제라는 법연에 눈을 뜨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며, 마음을 닦고, 공양하고, 예배하고, 자원봉사를 통해 공덕을 짓고,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새 법을 익혀, 물러남이 없이 정진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어린이 불자와 청년 불자는 늘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품에 안겨 부처님 마음으로 인류의 큰 일꾼이 되도록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자비의 보살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마하반야바라밀나무석가모니불나무석가모니불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마치겠습니다.
-
[백중기도] 7월 1일 백중 초재 법문
주지 법해스님 2022-07-01
안녕하세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어제 비가 억수같이 와서 오늘 또 비가 그렇게 많이 오면 어쩌나 했는데, 우리가 복이 있어서 도량을, 우주 법계를 깨끗이 한 다음에 우리 조상님들을 천도할 수 있는 오늘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제 49일 동안 백중기도를 합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께서 거짓말을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해서 결국은 지옥에 가 있는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백중이 열리게 됐어요. 그런 기록에 의해서 저희도 백중기도를 이렇게 하게 됩니다. 어떤 연유이건 간에 선망 부모님을, 또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영가님을 극락왕생으로 천도해 드리고, 또 나도 역시 마음을 닦는 것, 또 공덕을 짓는 그런 기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중기도는 내가 지은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그럽니다. 스스로 자, 스스로 작,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자, 스스로 받을 수, 자작자수, 내가 짓고 결국은 내가 받는 과보를 명확히 아는 그런 날입니다. 모든 거는 <누구때문에>가 없습니다. 결국 내가 짓고 내가 받게 되는 그걸 우리가 자업자득이라고도 말을 하죠. “아휴, 내 발등 내가 찍었다.” 이런 말 잘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본인이 지은 과보, 또 내가 한 거짓말이, 아들, 목련존자에게 거짓말을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받게 된 과보를 큰 교훈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마음을 한 번 다듬는 그런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잘못했으면 잘못을 시인해야 돼요. 근데 진실은 참 불편하더라고요. 제가 며칠 전에 어떤 스님이 “아, 주지 스님 키가 작았어.” 이러는데, 주지스님은 정말 키가 작거든요. 그런데 사랑이 담겨서 ‘주지 스님이 키가 작은데, 마음은 참 크고 원력이 대단하다’ 했을 때는 벌써 말의 톤이 달라요. 그러는데 주지 스님이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잘하는 꼴도 보기 싫어 가지고, “주지 스님이 키가 작아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래 맞아. 난 키가 작은데...’ 제가 이제 마음이 번뇌가 일어날 거 아니에요. 마음에 막 번뇌가 일어나는데, 제가 빨리 반야의 지혜 주사를 내 마음에 얼른 놨어요. ‘그래. 나는 키가 작은데, 진실인데 뭐 내가 이렇게 듣기 싫지? 진실은 불편하구나.’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저를 그렇게 꼴 보기 싫어서 하는 말은 상처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안 좋았을 때 꼴 보기 싫고 괴로울 때는 말을 하는 게 좋아요? 안 하는 게 좋아요? 안 하는 게 본전을 찾아요. 여러분들이 특히 가까운 관계, 여러분들의 아들 딸 남편 가족이 제일 가까운 관계잖아요, 조금 꼴 보기 싫은 일이 있잖아요. 선물 사오라 했는데 내 마음에 안 드는 선물 사 와서 생색만 들입다 내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때는 좀 거짓말로 내 마음을 대승적으로 갖다 놓는 거에요. “그래 고맙다. 아휴 그래 어미야 고맙다. 이 더운데 오느라고.”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돼요. 복을 주는 거예요. 그럼 다음에 또 사 오고 싶은데 “얘 이런 거 필요도 없는데 왜 사오니. 너나 써라.” 하고 툭 던질 수도 있죠. 꼴 보기 싫어서. 그런 행위는 우리 진관사 불자님들은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그게 마음 닦는 거예요. 저희 회주 스님께서 저 보고 “복을 지어라. 복을 지으면 네가 살기가 좋고, 네가 지은 복으로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산다. 마음을 닦아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 말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제가 ‘마음을 어떻게 닦지. 어떤 걸 마음 닦는다고 하지.’ 그랬어요. 근데 이제 스님 6주기가 지나기 전에 저는 그 말을 터득했어요. 마음 닦는 것. 아까와 마찬가지로 ‘법해스님. 키가 작아서 말이야.’ 이러면서. 그럼 벌써 억양이 틀리잖아요. 그러는데 “네, 저 키가 작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키가 작을수록 제가 얼마나 전생에 사람들을 무시했으면 키가 작겠어요. ‘얼마나 다른 사람을 무시해가지고 지금 이 과보를 받았을까’ 하면서 ‘더 잘하겠습니다.’ 이게 마음 닦는 거예요. 내가 그 사람이 한 말에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업을 짓게 되는 겁니다. 확실하게 알아들었죠. 제 이야기를 하니까 너무 쉽게 알아듣겠죠. 이게 우리 마음 닦는 기간, 지금 백중사십구일 기도하는데 내가 지은 죄를 참회하는 기간이에요. 그래서 항상 내 마음을 참회하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이렇게 하는 게 진정한 불자고 우리 마음의 정원 진관사 부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백중 49일 기도를 하는 세 번째는 이유는 효 사상이 들어있습니다. 효. 효는 만 가지의 근본입니다. 효를 못하는 사람은 깨진 그릇과 똑같다고 그랬습니다. 부모가 꼴 보기 싫고 부모에게 원망하고. 부모가 잘못하는 건 누구의 일이에요? 부모님의 일이에요. 근데 부모님 일을 내가 가져와서 부모님을 원망하면 자식의 도리가 맞나요? 안 맞나요.?안 맞아요. 아무리 부모가 나빠도 부모님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거거든요. 얼마나 많은 중생이 있는데 나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 은혜를 보답하는 그런 행위이고. 또 우리 시어머니 참 밉게 한다. 또 나를 못 잡아먹어 한다. 또 우리 엄마 아빠가 그냥 아버지는 주사가 심하고 어머니는 마음을 조그만하게 쓰고 이래도 그건 누구의 일이에요? 부모의 일이에요. 나는 그런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왜? 내가 복 받으려고. 그런데 내가 거기에 동 해가지고 같이 미워하고 같이 그 업에 휘둘리면 이 그릇이 깨지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기도를 해도 복이 쌓이지를 않아요. 그릇이 깨져가지고. 그래서 효사상을 실천하는 그런 기간이라서 오늘부터는 부모님에 대한 가득한 마음을 내는 거예요. ‘참 우리 아버지가 훌륭하시다. 참 우리 아버지 좀 약간 주사는 심하지만 마음은 착하셔.’ 이렇게 해서 마음을 바꾸는 그런 기간이에요. ‘우리 어머니 조금 어리석으시지만 참 내가 어떻게라도 기도해드려서 이생에 기도를 많이 많이 해서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바꿔 드려야지.’ 바꾸고 안 바뀌는 거는 나중 일이에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떻게 돼요. 편안해진다는 거예요. 이해가 가지요? 그래서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내 자신이 편안해져요. 죽어서 극락가는 게 아니라 살아서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또 가족이 다 무탈해지는 공덕이 있어요. 그리고 아울러서 돌아가신 선망 부모는 왕생극락을 하는 거예요. 그런 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효에 대해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면 돌아가신 부모님 또는 살아 생전에 부모님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드릴 수 있어요. 이 믿음은 화엄경에 공덕의 어머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믿지 않으면 절대 안 돼요.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거 우리 불자님도 많이 하고 있어요. 자식들은 기독교를 믿든 뭐를 믿든 상관 안 하시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부처님을 믿듯 자식들에게 부처님을 믿게 해주는 거. 그 공덕은 어마어마합니다. 왜 자식들이 행복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괴로울 때 괴로움에 부딪히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마음을 옮길 수 있는 힘을 증장하기 때문에. 그러면 자식들이 절에를 와야 되겠어요? 안 와야 되겠어요? 와야 돼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관사에 자식들을 데리고 와야해요. 데려와도 부끄럽지 않잖아요? 우리 진관사는 우리 손주가 와도 부끄럽지 않은 아주 떳떳한 사찰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이 진관사를 내가 선택했으니까, 자식들을, 손주들을, 며느리, 사위를 어디로 데리고 와야 된다? 마음의 정원 진관사로 데리고 와서 무조건 부처님 가르침을 믿을 수 있게 해야 돼요. 자식뿐만 아니라, 부모님 살아계시다면 부모님도 진관사에 오셔가지고 공양도 같이 해보고, 기도도 같이 해보고, 이렇게 하셔야 된다는 거, 그거를 꼭 실천하면 좋겠고요. 또 부도덕한 부모님을 어떻게 해요? 바르게 사시도록 이끌어 줘야 되는데 아까 얘기했잖아요. 내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법해스님 키가 작아요’. 이랬을 때는 그게 독이 돼요. 내가 나쁜 마음이기 때문에. 근데 법해스님을 존경하니까 ‘아유 우리 주지스님은 키는 작은데 마음이 대장부야.’ 벌써 톤이 달라요. 그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도덕한 부모님을 만약에, 그런 많은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 부모님을 교화할려면 내가 많이 기도를 해야 돼요. 내가 많이 기도해가지고 좋은 마음이 가득할 때, ‘엄마. 엄마 절에 한 번 갈까요? 모시고 갈까요? 우리 진관사 너무 좋아요. 밥맛도 좋고요.’ 그러면 어머니 업이 그 자비에 녹게 됩니다. 녹아서 오시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부도덕한 부모를 바르게 살 수 있게 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색한 부모님들 계시죠. 싹 모아놨다가 자기도 못 쓰고 큰 아들만 주는 거. 아들만 딱 주고 싶어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다른 사람들 딸도 다 알아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인색한 부모님이 지금 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갖고 있을 필요 없어요. 살금살금 주는 거야. 다 왕창 주지 말고 그래야 나를 따라오니까.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에요. 살금살금 주면서 절에 한번 가자 했을 때 확 풀어서 또 마음 좋게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지혜예요. 그래서 인색한 부모를 베풀게 한다. 그 다음 몸으로 익히는 거에요. 부모은중경 사경을 하고, 독송을 하고 이러면 내 몸이 기억하고 내 마음이 기억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공덕을 짓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 은혜를 진정으로 갚는 그런 시간이 아마 이 49일 백중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생과 현생에 지은 모든 업장을 영가뿐만 아니라 나도 이 기회에 마음을 맑히면 이 몸 전체가 거뜬해요. 마음에 걸림이 없어요. 괴롭지 않아요. 나쁜 말 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내 입에서 나쁜 말이 자꾸 나오는 건 뭔가 이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그거를 우리 스님들은 ‘아 저 사람은, 저 스님이 마음이 가난하구나.’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살림살이가 없구나.’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부처님처럼 우리가 괴로움이 없고 행복하려면 ‘다 맞다, 다 옳다, 다 좋다.’는 소리밖에 안 나와요. 그저 고맙고 그저 감사하고 이런 생각만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만약 지금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느 정도 올라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어제 그저께 초하룻날 종범 큰스님이 말씀하셨죠. 아라한과를 가니까 무쟁삼매 다툼이 없는 그런 마음이 지속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내 마음에 자꾸 뭔가가 불편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요. 자꾸 공덕을 닦아야 되는 거예요. 절에 와서 청소도 하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고, 또 막 입으로는 염불하고, 자면서 또 염불을 하고, 이렇게 자꾸 자꾸 자기를 정화를 시켜야 해요. 그렇게 하면 가족이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고 수명이 장수하고 복덕이 구족하고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다 극락왕생 할 수 있다. 이게 우리 백중 기도의 목적이죠. 내가 부산을 갈지 서울로 갈지 목적이 정확해야 되는데 이런 공덕이 있다. 49일 기도를 하면 그래서 우리가 평생에 자기 살기 바빠가지고 사실 부모님 잘 생각하지도 못하고- 오죽 못하면 어버이날이 있겠어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 은혜를 갚으라고 그런 것처럼- 우리도 부모님 은혜를 이 49일 동안 산 부모, 돌아가신 조상, 부모 다 은혜를 갚는 그런 기간으로 하시고. 또 한가지, 우리가 이 기도를 하면 극락 간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으셔야 돼요. 극락, 극락이라는 것은 사바세계와 달라요. 사바세계는 이 생각 저 생각 견해로 사는 세계를 우리가 사바 세계라고 그래요. 좋다, 싫다, 괴롭다, 받고, 싶다, 가지고 싶다. 이런 마음,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의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그럽니다. 근데 극락이라는 것은 오로지 지혜로운 마음, 한 마음뿐이 없어요. 그래서 극할 극자, 즐거울 락자입니다. 극히 즐거운 세계에 가는 것을 극락이라 그래요. 거기에는 가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 가지고 공덕만 짓는다는 거예요. 공덕만. 촌음을 쪼개서 공덕만 짓는 그런 세계, 그런 세계로 조상님들도 가고 나도 가자 이거예요. 그게 확실해야 돼요. 여러분들의 이 진관사가 사실은 극락이에요. 제가 견해로 살 때는 ‘언제 진관사를 도망갈까. 선방으로 빨리 도망가야지’ 이리 생각했는데, 저희 돌아가신 은사 스님께서 절대로 그냥 못 가게 ‘너는 갈 수가 없다. 나 아니면 너는 안 보내준다’ 하면서 잡혀 살았어요. 그때는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얼마나 어리석어요. 제가 어리숙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어떻게 복을 지을지를 생각합니다. 그 생각의 차이잖아요. 그때는 잡혔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요. 내가 어떻게 지혜로워서 이 경상도 촌골짜기에서 이 진관사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고 있나. 그러면서 매일 진관사를 어떻게 하면 정토마을로 만들까, 극락 세계로 만들까 ,오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부처로 만들까 밤낮없이 그걸 고민하고 있어요. 밤낮없이 그런데 저 혼자만 고민을 해가면 안 돼요. 저 혼자는 힘이 부족해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척척 일으켜주면 힘을 받아가지고 이 정토마을이 건설될 거라 생각합니다. 허리를 쭉 펴시고 눈을 살짝 감아보세요. 감으시고 합장 해보세요. 그리고 호흡을 깊이 한 번 들으셨다가 또 내시고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혀 보세요. 마음이 편안해 어디에 경직된 곳이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혀서 고요하게 해보세요. 그리고 제가 오늘 백중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과 망자들을 위해서 기도문을 적어왔습니다. 여러분들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여러분들도 그 소리에 담긴 내용에 마음을 따라와 보십시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이시어. 큰 신통력과 자비와 지혜의 변재가 불가사이하신 원력으로 임인년 49일간 백중 지장 기도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망부모 조상님들이 지장보살님의 큰 원력을 의지하여 부처님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임인년 49일 백중 기도 동안 기도법사 경한스님과 진관사 사부대중들의 법의 향연, 공덕의 잔치, 진리의 잔치를 베풀어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전하고 밝고 환희로운 마음으로 영원한 생명의 빛, 걸림 없이 끝없는 환희의 빛의 세상 극락 세계를 권해드립니다. 스스로 그 빛을 찾아가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모든 인간은 빈손으로 부처님의 인연으로 탄생하여 빈손으로 많은 인연을 짓고 돌아가게 됩니다. 이번 백중 49일 기도 공덕으로 선망 부모뿐만 아니라 인연 있는 모든 영가 극락왕생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제청 드립니다. 모진 비바람과 가혹한 설한풍을 견디며 잎과 꽃을 피우고 빨갛게 익은 풍성한 열매를 남겨놓고 소리 없이 낙엽이 되신 부모님. 한 그루의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모진 풍상과 생가지를 찢기우는 아픔을 참아야 하듯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인고의 세월로 자식이라는 인연법으로 낳아 기르시기까지 한과 눈물로 가지마다 생명을 나누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임인년 49일 백중 기도 이차 인연 공덕으로 지난 생과 금생의 죄업은 모두 소멸하시고 생전에 못다한 수행공덕이 있다면 낱낱이 원만하게 갖추셔서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으셔서 살아 생전 집착하던 일과 섭섭한 인연들을 모두 놓아버리시고 잠시도 명부의 어두운 길에 헤매지 마시고 칠보 연꽃 속에 화생하시어 위 없는 미묘 법문 받아 지녀 무생법인 남김없이 요달하시고,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셔서 나무 아미타불님을 친견하길 바라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마치겠습니다.
-
[신중기도] 6월29일 음력 6월 신중기도 입재 법문
종범스님 2022-06-29
공양 올리는 이야기獻供行法⑤ - 味 공양의 진실 - 酥酪味(소락미) • 白米味(백미미) • 珍羞味(진수미) 안녕하십니까. 오늘 임인년 6월 초하루 진관사 법문은 공양 이야기 중에서 음식 공양, 음식 공양에 대한 말씀입니다. 음식 공양을 이름으로 붙일 때 진수공양, 진수라는 건 음식 진, 음식 수, 진수(珍羞)라고 하거든요. 백미음식, 흰 쌀을 가지고 올리는 음식, 또 우유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서 올리는 공양인데, 우유로 만든 음식을 소락(酥酪)이라고도 하고, 가장 잘 만든 음식을 제호(醍醐)라고 하는데 이게 다 공양을 위한 음식들인데요. 이걸 한마디로 말해서 맛 미자를 써서 미공양이라고 그래요. 맛 미자 미공양. 미공양은 소락미, 백미미, 진수미인데 왜 이 우유로 만들어서 올리는 공양이 제일 앞에 나오느냐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고행을 하시는 도중에 우유 공양을 드시고 체력을 회복해서 성불했어요. 그래서 이 우유 공양을 불교 공양 역사에서 최초 공양이라고 그래요, 최초. 불교의 최초 공양은 소락미 공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열반경에서는 순타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가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렸는데 그건 최후 공양이라, 최후,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이름이 소락미 공양, 우유로 만들어서 올리는 음식의 공양 이렇게 되거든요. 그럼 이 공양이라는 게 뭐냐.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공양을 올리는 순간에 이 내 몸에 한정돼 있던 내가 온 법계로 퍼져나가는 공덕을 말해요. 공양을 한번 올리면 그 공양 인연으로 작은 내 몸이 온 우주에 전달이 된다. 그래서 공양 올릴 때 발원하기를,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이, 원하옵니다 이 공덕이,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하야, 일체에 다 전해져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이, 나와 중생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원하옵니다.” 이렇게 발원을 하거든요. 그게 공양을 올리는 순간에 나의 몸이 온 우주를 향해서 퍼져나가게 돼요. 그리고 공양을 올리는 순간에 지금 공양 올리는 몸은 사람 몸인데, 수수인신(蠅受人身)이나,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았으나, 심동여래(心同如來)라, 마음은 부처님과 똑같아진다. 그래서 인신심불(人身心佛)이다. 인신, 사람 몸으로 마음이 부처님과 같아지는 행위가 공양이다. 이렇게 법문을 해요. 그 공양 올리는 순간만은 내 몸은 사람인데 그 마음은 부처님이다, 이런 거거든요. 그런데 음식이라고 하면 나물이라든지 국이라든지 탕이라든지 그냥 일상생활에서 먹는 걸 다 음식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 음식 공양은 상단에는 안 올려요. 부처님 불단에는 국도 안 올리고 나물도 안 올리고 탕도 안 올리고 안 올려요. 그 안 올리는 이유가 있어요. 그럼 신중단하고 영단에만 올려요. 그래서 상단 마지는 향화 등촉 다과 이런데, 향과 꽃과 등과 차와 과일, 향화등다과 이 5가지가 상단에 올리는 공양인데 간이 하나도 안 들어갔어요. 맛이 안 들어갔어요. 그래서 사람이 싱거울 때는 상단마지라고 해요. 마지라는 게 공양물이라는 말이거든요. 상단 마지가 싱겁다고. 米供養 拜獻禪悅味 미공양 배헌선열미食味酥酪 造出天廚供 成道當初 牧女先來送 식미소락 조출천주공 성도당초 목녀선래송老母會將 托在金盤奉 獻上如來 大覺釋迦尊노모증장 탁재금반봉 헌상여래 대각석가존惟願 慈悲哀愍受此供유원 자비애민수차공 근데 이 맛이라는 거는 선열미(禪悅味)라고 해서 선정에 들어있는 맛을 뜻하는 건데 부처님의 선정은 보통 선정하고 달라요. 그래서 이 맛은 안 하고. 또 이 맛은 법을 깨우치는 게 아니라 허기를 달래는 거라 그래서 제일 배고픈 순서대로 공양을 올려요. 일체 중생에게 제일 먼저 공양을 올리고, 그다음에는 호법성신에게 공양을 올리고, 이제 마지막에 제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려요. 순서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음식은 영단에 음식을 잘 차리는 거고, 그다음에 천상신장에게 공양하고 이제 제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데, 그 유래를 보면, 이건 옛날 진언권공 의식문이나 지금 석문의범에 있는 음식 내용은 똑같은데, 그렇게 됐어요. 식미소락(食味酥酪)은, 음식으로 맛을 내는 우유 공양은, 조출천주공(造出天廚供)이라, 얼마나 그 음식 맛이 좋은지 하늘 주방에서 만들어낸 공양물이다. 주방이 인간 주방이 아니고 하늘 주방에서 만들어낸 음식물이다 이거죠. 근데 성도당초(成道當初)에, 부처님이 도를 이룰 그 처음에 목녀가 선래송(牧女先來送)하니, 그 소 치는 여인이 먼저 와서 공양물을 보내왔습니다. 근데 보통 ‘목녀가 공양을 올렸다’ 그 말만 있는데, 여기 의식문에는 ‘목녀의 노모가 있어서 준비했다’, 이렇게 나와요. -나 이것도 처음 봤네.- 그 안에 노모가 증장(老母會將), 일찍이, 탁재금반봉(托在金盤奉)이라, 금반에다가, 좋은 쟁반에다가 얹어서 받들었는데, 그것을 헌상여래 대각석가존(獻上如來 大覺釋迦尊)이로다, 여래 대각 석가존에게 헌상을 했다, 올렸다. 이런 데서 이제 미공양이 유래가 됐으니까 이런 맛으로 이루어지는 음식, 배고픔을 달래는 이런 음식이 일체중생 또 호법성신, 삼세여래에게 순서를 바꿔서 올린다. 그러니까 유원(惟願), 원하옵나니, 자비 애민(慈悲哀愍)으로 자비로서 애민이 여겨서, 수차공(受此供)하소서, 이 공양을 받으소서. 이렇게 작법을 하고 찬미(讚米)가 있는데, 여기서 이제 쌀 미자를 썼어요. 讚米 찬미解使衆生皆飽滿 많은 중생 다 포만케 하여해사중생개포만能令萬劫免飢虛 무궁세월 기허를 면하게 하도다.능령만겁면기허酥酡美味獻諸天 소락의 좋은 맛 제천에 헌공하고소타미미헌제천香積上方呈我佛 향적의 상품으로 여래께 올리도다.향적상방정아불소락이나 진수는 안 쓰고, 대표적으로 쌀 미자를 쓰는데, 이 미는 백미의 음식이나 진수의 음식이나 우유의 음식이나 똑같은 거예요. 근데 이 음식 공양을 왜 올리느냐. 이제 얘기를 하기를, 해사중생개포만 (解使衆生皆飽滿)하고, 여기서 해자는 해석할 해자인데, 이거를 자전에 찾아보면 많을 해자, 많다, 가지가지다, 이런 해자가 돼요. 그래서 많은 중생으로 하여금, 온 중생으로 하여금, 개포만하고, 다 배부르게 하고, 배고픈 중생이 다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공양 올린다. 중생이 제일 먼저 나오죠. 왜냐하면 불보살은 허기가 없어요. 그러니까 허기를 느끼는 중생에게 맛의 공양을 제일 먼저 올린다, 이게 작법 의식의 순서예요. 그래서 능령만겁면기허(能令萬劫免飢虛)하소서. 능히 만겁이 지나가도록, 미래의 세월이 영원하도록, 기허, 배고프고 허전하고 이런 걸 면하게 하소서. 공양 한 번 딱 받고는 미래의 세월이 다 하도록 배고프고 허증 나는 고통이 영원히 없어지게 하십시오. 이런 거죠. 소타미미(酥酡美味)로, 소타, 타자도, 우유 음식 타자인데, 우유 음식 소, 우유로 만든 이 맛 좋은 음식으로 헌제천(獻諸天)하나이다. 모든 천상에게, 하늘 신장에게 헌공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맛 중에서 제일 좋은 거, 향적상방(香積上方)으로, 유마경에 보면 향적세계의 음식이 나오는데, 우주법계에서 제일 좋은 음식이 향적불 세계 음식이다. 근데 향적불 세계에서도 방자는 모 방자인데, 등급이라는 방자에요, 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하는. 상방이라는 건 향적 세계에서도 가장 상등급의 음식으로 정아불(呈我佛)이니라, 나의 부처님께 정, 바칩니다. 이렇게 돼서 일체 중생에게 공양을 하고, 제천신장에게 공양을 하고, 일체 여래에게 공양을 하는데, 순서를 제일 먼저 중생에게 하고, 그다음에 호법신장에게 하고, 그다음에는 여래에게 한다. 이것이 불교의 공양 법도죠. 願我一身化多身 一一身出百千手 원아일신화다신 일일신출백천수各執香花燈茶果 供養十方諸佛陀각집향화등다과 공양시방제불타(學祖譯 眞言勸供)(학조역 진언권공) 그러면 이게 뭘 의미하느냐. 이렇게 공양을 올리는 그 공덕이 원하면 다 이루어지는 게 이게 묘법이거든요. 원하옵니다. 뭘 원하느냐. 아일신이 화다신하고(願我一身化多身), 나의 한 몸이 많은 몸으로 이루어지고, 나의 한 몸이 많은 몸으로 만들어지고, 또 그 몸 하나하나에서, 일일신에서 출백천수하야(一一身出百千手), 그 많은 몸이 한 몸에서 나왔는데 그 몸 하나하나에서 백 가지 천 가지 손이 나와서, 각집향화등다과(各執香花燈茶果)하야, 그 손 하나하나마다 향과 꽃과 등과 차와 과일을 다 받들어서, 공양시방제불타(供養十方諸佛陀)하나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 이게 공양의 의미예요. 한 몸이 무량 몸이 되고, 그 무량 몸 중 하나하나 몸에서 백천수가 나오고, 백 가지, 천 가지 손이 나오고, 그 손 하나하나가 향화등다과미, 향공양, 화공양, 등공양, 다공양, 과공양, 미공양, 음식 맛의 공양을 받들어서 공양시방제불타(供養十方諸佛陀)하나이다, 시방제불타께 공양한다. 공양시방제달마, 공양시방제승가, 작법이 그렇게 돼 있어요. 불법승 삼보에게 이렇게 공양을 올린다. 이렇게 올리는 순간에 내 한 몸이 온 우주에 가득하고, 나는 지금 사람의 몸인데 공양 올리면 그 공덕으로 마음은 여래 마음이 된다. 인신이 불심이다. 사람은 몸은 사람인데 인신인데 마음은 여래다, 불심이다. 언제 부처님이 되냐. <공양 올리는 그 순간에는 내 마음이 부처님이다> 이거예요. 참 기가막혀요. 禪悅味 선열미阿羅漢 : 四禪八定 次第禪定 有餘涅槃 無諍三昧 아라한 : 사선팔정 차제선정 유여반야 무쟁삼매菩 薩 : 般若三昧 於相見空 觀色觀空 觀照法界 보 살 : 반야삼매 어상견공 관색관공 관조법계如 來 : 海印三昧 遍照法界 大寂光明 寂照常照여 래 : 해인삼매 변조법계 대적광명 적조상조 근데 이 맛을, 음식에는 맛이 있는데, 그 맛은 이 선정의 희열, 선열미(禪悅味)라고 선정의 희열미를 음식 공양의 맛에 비유해서 올린다. 이제 선정에 깊이 들었을 때 그 기쁨이 있는데 그게 선열이란 말이죠. 선정 희열, 기쁨, 그게 이 선정 희열 기쁨이 어떤 거냐. 아라한(阿羅漢)의 선정에는 무쟁삼매(無諍三昧)가 있고, 아라한의 삼매는 무쟁삼매, 없을 무, 다툴 쟁, 다툼이 없는 삼매에 드는 것이 아라한의 선열이다. 선정 희열이다 이거죠. 보살(菩薩)의 삼매는 반야삼매(般若三昧)에요. 여래(如來)의 삼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다.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이라, 능인, 능인은 부처님인데, 부처님 해인삼매 중이라. 무쟁삼매, 반야삼매, 해인삼매를 말하는 건데. 그럼 아라한 무쟁삼매는 뭐냐. 사선팔정 차제선정(四禪八定 次第禪定)인데, 아라한 삼매는 차재선이 있어요. 차재선. 초선, 이선, 삼선, 사선. 이것이 사선인데 딱 순서가 정해졌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걸 색계선이라고 해요. 욕계 색계 무색계 3계 중에, 욕계는 무선이고, 욕계는 선이 없고, 삼매가 없단 말이에요. 왜냐. 욕망이 들끓으면 삼매가 없어요. 욕계무선이라. 색은 보이는 세계인데, 이 색계에 사선사정이 있어요. 첫 번째가 이생희락선(離生喜樂禪)인데, 색계 초선에 이제 들어가려면 욕계 욕망을 순간만이라도 다 버리면 그게 이욕이란 말이에요. 이욕. 욕망을 버렸을 때 기쁨이 확 일어나요. 그게 희락이에요. 그래서 이생희락선이라, 욕망을 버렸을 때 나타나는 즐거움이다. 기쁨이다. 이게 이생희락 색계초선이란 말이죠. 근데 이때에는, 초선에서는 선정에 들어 있는데도 각관(覺觀)이 있다. 각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귀에 들리는 것도 있고, 느낌과 관찰이 있단 말이죠. 이게 초선에 각관이 있고 또 희락이 있다. 즐거움을 느껴요. 이게 아주 초선에는 감각도 있고 기쁨도 있다. 처음에 입정을 해도 다 마찬가지에요. 이런 순서로 가. 이게 이생희락 색계초선이고. 그다음에 정생희락(定生喜樂)인데, 선정이 조금 깊어지면 그 조용한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게 희락이에요. 기쁘고 즐겁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각관이 있어요. 보이고 들리는 게 다 있어. 이 선정 아주 초기에 일어나는 게 감각하고 기쁨이에요. 그 감각하고 기쁨이 있는 거는 선정의 아주 초기 현상이에요. 색계 제3선에 이제 올라가면 이희묘락(離喜妙樂)이라, 기쁨이 없어요. 즐거움을 여이어요. 2선에서는 이런 거 다 느끼는 거예요. 각관을 다 느끼고 희락을 느낀단 말이에요. 근데 제3선에 올라가면 희락을 못 느끼고요. 각관도 못 느끼고요. 그런데 온몸이 가득히 즐거워요. 그래서 이걸 이희묘락이라, 즐거움을 여윈 묘한 즐거움이다. 기쁨을 여윈 묘한 즐거움이다. 이게 색계 제3선이란 말이에요. 그게 제4선에 올라가면 어떻게 되냐. 즐거움이 없어요. 그리고 기쁨도 없어요. 이희불고불락(不苦不樂). 부각부관. 그런데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불고불락을 버릴 사자, 사라고 하는데,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평등한 마음, 평등한 마음, 그게 사념인데, 버릴 사자 사념인데, 불고불락 불락사념이란 말이죠. 그 불고불락심이 아주 청정해요. 여기서 이제 도를 깨닫는 거예요. 초선, 2선, 3선에서는 못 깨달아요. 4선에 올라가서 도를 깨닫는다. 즐거운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고, 감각에 팔리지도 않고, 불고불락심이, 외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이 아주 청정하다. 그런 상태로 딱 보면 거기서 도를 깨닫게 되고, 석가모니도 처음에 성도할 때도 색계 제4선에서 성도를 했고, 열반하실 때도 이 색계 제4선에서 열반을 했다. 이렇게 초기 경전과 화엄경 십지품 제3지 발광지에서 자세히 가르치고 있어요. 그다음에 무색계 사정(無色界 四定)이 있는데, 선정이 아니고 사정인데, 무색계에 딱 들어가면 허공이 끝이 없는 걸 보게 되는 선정이에요, 허공이. 이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이라고 그래요. 허공이 끝이 없이 허공계에 들어가요. 또 허공계를 이해하는 인식계가 있는데 그 끝없는 인식계에 들어가요,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더 깊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걸 느끼게 돼요, 이걸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고. 더 깊이 들어가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 이게 이제 무색계 사정이란 말이죠. 그래서 색계 사선정하고 무색계 사정을 합해서 사선 팔정(四禪八定)이라고 하는데, 무색계는 정뿐이니까, 그 색계는 선도 있고 정도 있으니까, 사선 팔정이라고 하죠. 이것은 전부 차제정(次第定)이에요. 초선, 중선, 3선, 4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근데 이제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수상멸정이 있어요. 수, 느낌, 상, 생각, 다 없어진 정이 있는데, 그걸 멸진정(滅盡定)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 멸진정에 들으면 얼마나 오래 가는지 몰라요. 1겁도 가고 이겁도 간다고. 전생사를 얼마나 깊게 보는지 몰라요. 그런데 다시 나와 멸진정이 끝나려니까, 그래서 그걸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고, 열반은 열반인데 완전히 생사가 끝난 열반이 아니라 유여, 남음이 있는 열반이다. 유여열반이라. 그런데 삼계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없어서 삼계 혹이, 삼계 미혹이 다한 결과이다. 근데 무쟁삼매(無諍三昧)인데, 무쟁삼매라는 게 뭐냐. 이 세간 물질을 두고 아라한은 다투지 않아요. 물질을 두고 다투지 않아요. 왜 그러냐. 아라한은 타심통(他心通)을 얻어서 물질을 가지고 다툼이 생기면 그 물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물질을 다투는 사람의 마음을 봐요. 그래서 안 다퉈요. 그러니까 이게 아주 중요한데, 어른들이 뭐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런데 야단치는 소리를 들으면 안 돼요. 어른들이 이제 무슨 심보로 야단치는가. 그 심보를 들여다보면 싸울 일이 없어요. 다투는 사람의 마음을 보고 그 물질을 놓고 서로 다투지 않는다. 그래서 무쟁삼매요, 유여열반이요, 무쟁삼매다. 4선 8정이 차제선정이다. 이것이 이제 아라한의 무쟁삼매요, 이것이 아라한 선열의 맛이다. 그런데 보살은 이 멸진정에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반야로 도피하는 거, 이게 반야바라밀이다. 그럼 반야는 뭐냐. 어상견공(於相見空)이라, 이 모든 일은 물질에서 공을 보는 게 반야에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오는 우리 몸인데 ,우리 몸이 딱 불생불멸임을 보는 게 반야다 이거지요. 우주 만법이 다 불생불멸인 걸 보는 게 반야에요. 이게 반야삼매예요. 그러니까 멸진정에 들 필요가 없어요. 색에서 공을 본다. 상에서 공을 본다. 이게 반야삼매다. 그래가지고 보살은 관색관공(觀色觀空)이라 중생들이 보는 색도 봐요. 중생들은 이거를 이런 이런 색으로 본다. 그 색만 보고 색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불생불멸 무생법이다, 생멸 없는 법이다, 이걸 보는 거예요. 그래서 색도 보고 공도 본다. 그래가지고 이걸 관조법계(觀照法界)라고 그래요. 관조, 온 법계를 이렇게 관색관공으로, 관조라는 말은 본다는 말인데, 본다. 그래서 보살삼매는 관조삼매라고 해요. 일체 색이 다 중생들이 보는 세계가 있지만 그 모두가 불생불멸 제법공상이다. 이게 반야삼매라고 해요. 그래서 이 관조삼매 반야삼매가 이게 보살 삼매에요. 그러니까 이런 삼매 음식을 중생에게 올리고 신장에게 올리고 여래에게 올린다 이거지요. 기가 막히다. 여래삼매는 뭐냐. 해인삼매(海印三昧)인데 해인은 비유란 말이죠. 바다가 넓고 깊은데 뭐 하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모든 그림자가 바다에 다 비춰. 그게 해인이에요. 그래서 여래는 보살처럼 뭐 일부러 보고 색을 보고 공을 보고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턱 보면 변조법계라(遍照法界), 시방 법계를 다 비춘다. 그래가지고 대적광명이야. 항상 크고 큰 고요하고 고요한 광명이 적조상조(寂照常照)라, 이 적조가 이게 해인 삼매인데, 고요한 상태로 본다. 적이라는 건 고요하다 이 말이죠. 조라는 건 본단 말이고, 또 항상 본다. 그래서 여래는 입정, 출정이 없어요. 정에 들고 정에서 나오는 게 적조이기 때문에 그게 해인삼매. 적적히 보고 항상 본다. 이러한 삼매, 해인삼매, 반야삼매, 무쟁삼매, 이러한 삼매의 선열미로 중생에게 올리고, 신장에게 올리고, 여래에게 올리는 것이 맛의 음식으로 공양 올리는 뜻이다. 이런 말씀이거든요.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
[백중기도] 6월 25일 백중기도 입재 법문
가섭스님 2022-06-25
마하반야바라밀.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한 번도 안 맞춰봤는데 이 정도 맞으면 엄청난 겁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오늘은 하안거 입재하고나면 늘 기도 입재하게 되는 백중입재일입니다. 오늘 백중을 입재하면서, 늘 이때만 되면 우리 불자들은 백중을 입재하게 되는데, 백중은 말 그대로 불교 5대 명절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는 우란분재 이렇게 얘기를 하죠. 백중이라는 말은 100가지 음식을 마련해서 100명의 대중을 모셔서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선망한 조상들을 추모하는 걸 의미하기는 하죠. 그래서 100가지 음식과 100명의 대중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첫 번째로 인연을 갖춰야 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백중을 기도 입재 하면서 첫 번째로 준비해야 될 것이 <내 마음에 인연을 갖춰야 된다.> 근데 <그 인연을 어떻게 갖추느냐?> 라는 거잖아요. 마치 농번기는 한참 지나서 지금은 들녘들이 모도 많이 자라고, 밭에 곡식들도 많이 자라 있지만, 농사를 짓기 전에 이렇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이, 그런 마음의 준비가 입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입재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죠. 마음의 결을 다듬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근데 그 마음의 결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에 내가 절에 오기 전에 마음과 달라야 되겠죠. 우리 마음의 결을 다듬는 첫 번째가 인연을 갖춰라. 어떤 인연을 갖출 거냐. 우리가 누구를 만나면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좋은 인연이라는 걸 내 마음에 갖춰놔야 그다음에 결과가 따라 오겠죠.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원인과 결과지만, 어떻게 보면 원인적인, 인과적인 것보다는 인연이라는 말은 어떤 씨앗을 우리의 마음속에 뿌릴 거냐가 더 무게 중심에 와 있죠. 여러분이 지금 이 백중을 입재하면서 마음에 어떤 씨앗을 뿌릴 거냐. 그 인연을 갖추는 거거든요. 어떤 씨앗을 뿌릴 겁니까. 백중천도재를 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마음속에 발원들을 하죠. 그게 발원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씨앗을 뿌리는 건데, 아마도 여기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씨앗이 다 다를 겁니다. 그런 여러 가지 백중을 통해서 조상을 추모하고 기리고 또 천도해서 내가 뭔가를 얻을 거라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첫 번째로 인연을 갖춰야 되는 것은, 이 백중 49일 동안의 첫 번째 인연은 뭐냐 그러면, <밖에서 구하지 마라>. 이게 제가 입재를 하면서 첫 번째 여러분에게 드리는 화두 같은 이야기입니다. 밖에서 구하지 마라. 우리는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구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인지상정이죠. 그런데 밖에서 구하면 한 번도 만족한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밖에서 하는 건 항상 내 안에 들어오면 갈등 내지는 갈증, 이 두 가지로 됩니다. 갈등과 갈증. 그래서 이번 49일 동안에는 밖에서 구하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 있던 시선들을 끌어들여서 내 안에서 뭔가를 구해야 되겠다. 좀 전에 우리 주지스님께서 49일 동안에 뭐 염송하라고 그랬습니까? 지장보살. 금세 까먹었어요? 지장보살를 염송하라고 했죠. 지장보살 염송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밖에서 지장보살를 염송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지장보살를 염송해야 하는 거 이게 마음의 결이에요. 결의 변화입니다. 무심코 그냥 밖에서 우리가 기존 하던 대로 지장보살님을 염송하던 것들을 끌어와서 내 마음의 심중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지장정근을 해야 된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49일 동안의 첫 번째 인연을 갖추는 것은 밖에서 구하지 마라. 그 밖에서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망령된 인연을 버려야 된다, 놔야 한다, 망령된 인연을. 망령된 인연이라는 것은 허망한 인연입니다. 허망한 인연을 내가 놓지 않으면 밖에서 자꾸 구하게 돼요. 지금 이 말씀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지눌스님께서 쓰신 수심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생이 허덕거리는 것은 밖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이 안에 다 모든 보물이 들어가 있는데, 이미 갖춰져 있는데, 그거를 다른 말로 법장이라 하고 다른 말로 연화장이라고 하죠. 근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자꾸 찾다 보니까, 그 구한 것이 나에게 갈증이 되고, 구한 것이 나에게 나의 삶 속에 갈등으로 점철돼 간다. 그래서 밖에서 구하지 마라. 두 번째로는, 한여름에, 좀 있으면 여름 휴가 가면 해수욕들 가시죠. 해수욕. 바닷가에 가서 가족들하고. 진관사 쭉 오다 보니까 북한산 자락에 물놀이 하는 데가 있대요. 보니까 거기 이미 차가 만석이야. 차가 엄청나게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물놀이를 가면 우리는, 물놀이가 핵심이 아니라, 물놀이를 가면, 여름 되면 우리는 선글라스를 끼죠. 선글라스 다 있으시죠. 선글라스를 왜 껴요. 눈부시니까. 물론 패션으로 끼시는 분도 있어요. 보니까 패션이 아니라 자외선을 차단해서 눈을 보호하기 위한 거잖아요. 근데 그 선글라스에 따라서 보이는 게 어떤 빨간 선글라스를 끼면 빨갛게 보일 거고, 또 약간 누런 선글라스면 누렇게 보이겠죠. 그 선글라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내 눈을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이 그 선글라스에 의해서 다르게 보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인연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자외선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끼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그런 결을 다듬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다라는 겁니다. 아주 쉬운 일이에요. 마음 결을 다듬는 거. 그래서 순간순간에 밖에 향해 있던 마음들을 자꾸 내 안으로 끌어들이면 그것 자체가 이 백중 49일 동안에 가장 큰 준비이면서도 꼭 필요한 그러한 인연을 갖추는 거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절에 살 때 절에 항상 틀어놓는, 언젠가부터인지 몰라도 아주 어렸을 때는 아닌 것 같고 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였죠. 국민학교 다닐 때에 절에서 틀어놨던 염불이 하나 있어요. 근데 그 염불이 너무 좋아서 어렸을 때 들었는데 그 스님의 염불 소리도 참 구성지고 좋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그때 한글로, 그전에는 다 한문으로 이런 경전을 읽고 그랬는데, 유일하게 한글로 염불한 염송, 염불이었어요. 그게 뭐냐면 부모은중경입니다. 부모은중경. 비구니 원정이라는 스님이 음반을 내신 건데, 옛날에는 테이프였어요. 테이프를 사와가지고 법당에 트는데 이게 옛날에 자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돌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법당 가서 테이프를 계속 돌리게 하는 소임이 저였어요. 염불이 안 끊어지게, 그래서 그 염불이 어떤 거냐. 한번 들려드릴까요.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또 가벼우니라. 아난이 이 말을 듣자 가슴을 오리는 듯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오면 어머니의 은혜를 갚사오리까?" ....... 음성이 좋으시죠. 이걸 계속 들을까요 그냥, 법문 하지 말고. 근데 어렸을 때도 이걸 들으면, 아주 철이 없을 때인데도 어머니의 은혜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백중이라고 하는 것이 선망 부모의 은혜를 갚는 건데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부모은중경은 한 번씩은 읽어보셨겠지만, 부처님하고 아난하고 나누는 대화란 말이죠. 어느 날 부처님하고 아난하고 길을 가다가 뼈 무덤을 보고 부처님이 예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예를 하니까 아난이 물어봅니다. “부처님은 삼계의 대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부신데 어떻게 뼈 무덤에다가 예를 하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 뼈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아난이 “살아 생전에는 모습이 있으니까 남자인지 여자인 줄 아는데 뼈만 보고 어떻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이 뼈가 남자의 뼈라면 희고 무거울 것이며, 여자의 뼈는 검고도 가벼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 이유가 뭐냐. 그것 때문에 쭉 얘기를 하는 거예요. 조금 전에 경전에 나왔듯이 “아기를 낳을 때 서말 서되나 되는 피를 흘리고~”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양육할 때 젖을 먹이면서 본인의 몸에 있는 진액을 다 아이에게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이 80이 되더라도 60대 아들이 소식이 없으면 노심초사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다.”까지 쭉 얘기가 나온단 말이에요. 부모님이 은혜라고 하는 건 그만큼 지중하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이제 그런 지중함을 살아 생전에 갚으면 좋은데 살아 생전 못 갚고 꼭 인연이 다 하고 나서 그런 마음들이 돌아가죠. 그게 왜 그럴까요? 알 수가 없어요. 꼭 지나고 나면 후회하죠. 왜 그러냐 그러면, 우리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미혹. 미혹하기 때문에 그런 인연들을 그때그때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고 나면 늘 후회하게 된다. 오늘 이 백중기도라고 하는 것은 그런 미혹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부모님의 은혜를 아주 진중하게 되뇌이는 그런 49일을 준비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부모은중경에 보면 부모의 은혜 10가지가 나오잖아요. 10가지가. 내가 오늘 10가지를 적어왔는데 이걸 한번 잘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첫 번째로는 잉태하여 지켜주신 은혜. 아기를 잉태하여 품어 주고 지켜주는 은혜. 여기는 주석을 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다 뜻을 알잖아요. 10가지만 새겨보자라는 거예요, 마음속에. 두 번째로는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감내해 주신 은혜. 셋째는 아이를 낳으시고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 넷째는 입에 쓴 것 삼키시고 단 것은 먹이시는 은혜. 다섯째는 마른 자리 내어주고 젖은 자리 뉘시는 은혜. 여섯째는 젖을 먹여 키워주신 은혜. 일곱째는 더러운 것 깨끗하게 씻어주신 은혜. 여덟째는 먼 길 가는 자식을 걱정하는 은혜. 아홉째는 자식 위해 궂은 일도 자청하신 은혜. 열 번째 끝까지 사랑하고 염려하는 은혜. 이렇게 10가지인데, 이 10가지 마음으로 우리는 자식을 키우고, 또 우리 자식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죠. 근데 이제 문제는 이러한 마음들을 서로 간에 알면 좋은데 자식은 잘 몰라요, 그 마음을. 근데 본인이 이제 부모가 돼 보면 그걸 좀 알죠. 근데 이미 그때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돌이키기가 어렵죠. 우리가 그런 마음들을 자식에게 잘 물려주려면 우리 스스로가 이런 마음들을 잘 잊지 말고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막상 일상에 돌아가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마음을 안으로 들여야 되는데, 마음을 바깥으로 자꾸 돌리다 보니까 어떤 경계나 아니면 현상에 빠져서 화를 내기도 하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고 상처되는 말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지나고 보면 내가 부모에게 정말 잘해야 할 것 중에서 맛있는 걸 사드리고 좋은 옷을 해 드리고 이런 것보다도, 공통적으로 많은 분들이 하는 얘기가 뭐냐면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릴 걸, 따뜻한 소식 한 번 전해드릴 걸,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돈이 드는 게 아니에요. 물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못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 마음이 뒤바뀌어 있기 때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 때문에, 바뀌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백중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다른 의미로 우란분이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 우란분이라고 하는 게 목련 존자가 자기 어머니를 보니까 이생에 인연을 잘못 맺어서 어떤 과보를 갖고 있냐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인연을 과보로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란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듭니까. 생각만 해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도 뒤바뀐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 뒤바뀐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 바로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백중 49일 동안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요. 뒤바뀐 생각이 뭐예요. 몽상이잖아요. 몽상, 전도몽상이라 그러잖아요. 뒤바뀐 생각 그 뒤바뀐 생각을 접어야 되는데, 그 뒤바뀐 생각을 하는 게 바로 미혹, 아까 말씀드린 미혹하다. 근데 중생 그러면 따라오는 게 미혹이란 말이에요. 부처님 그러면 지혜 광명이고, 중생 그러면 미혹인데, 그 미혹함이라고 하는 건 두 가지 줄기로 우리가 거기에 빠져듭니다. 그 미혹함 첫 번째가 뭐냐. 이 몸에 대한 잘못된 뒤바뀐 생각이에요. 이 몸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지는 이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경계에 대한 미혹인데, 이 경계라고 하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마음 경계예요. 어떤 마음에 어떻게 빠져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혹이라는 게 두 가지죠. 몸에 대한 미혹과 경계에 대한 미혹. 이거를 이제 바꾸는 건데 어떻게 바꾸느냐. 몸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몸은 무상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상하다. 목련 존자 어머님이 그 거꾸로 매달린 과보를 받는 것은 첫 번째는 몸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무상하다는 건 뭐야. 항상함이 없다는 거잖아요. 항상함이 없다. 여러분 지금까지 오시면서 몸이 항상 했던 거예요?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경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 무상하다는 것 중에 무상하다고 그래서 그냥 기대를 져버리면, 그걸 기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이게 아이러니한 겁니다. 무상이 몸을 기대야지 참을 얻을 수가 있어요. 그 무상함 속에 참이 있는 거예요. 무상이라는 것은 가화합된 거지만 그 가화합된 속에서 의지하고 뭔가 마음을 결을 바꾸고, 마음을 변화시켜야지만이 참으로 갈 수가 있어요. 근데 이 무상이라고 하는 것이 다 덧없다 놔버리면 참으로 가는 진여문 자체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이 몸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순간순간 계속 까먹어요. 까먹어서 이 몸에 집착을 하죠. 이 몸의 느낌에 집착을 하고, 이 몸의 편안함에 집착을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감각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고, 느낌적인 것이 편하지 않고 그러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그렇단 말이에요.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이 커지면 불행해지고. 아주 단순한 겁니다. 단순한 이치인데 그 경로를 잘 이해하면 체득이 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에 마음의 경계에 빠지고 몸의 경계에 빠지니까 그 한 단계도 가지 못하는 거예요. 몸이 허망한 것 맞아요. 이 몸이. 그런데 이 몸을 의지하지 않고는 부처님전에 예경할 수가 없잖아요. 허망하다고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이 허망한 몸을 굴려서, 움직여서 내가 지혜의 마음으로 바꾸고 자비한 마음으로 바꾸는 거다. 근데 마음의 근본은 항상 “아. 이 몸은 항상 무상한 거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지만이 뒤바뀐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아시겠죠. 나중에 아난존자가 묻습니다, 부처님에게.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됩니까?” 부모은중경에 아주 명징하게 나와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이 명징하게 나와 있어요. 그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은 축약된 본 말고, 핸드폰으로 이렇게 부모은중경을 찾으면 원문도 나오고 해석된 것도 나오고 다 나와요. 그거를 읽어보시면 아주 명확하게 해설된 거 있으니까 거기서 부모의 은혜를 갚는 여섯 가지 방법을 꼭 숙지하시고, 다음 백중 회향 전에 와가지고, 올 수 있는 인연이 또 된다면 꼭 물어볼 거예요. 꼭 물어볼 거니까 숙제니까 그렇게 알아주시고. 백종 입재하면서 오늘 말씀드린 두 가지, 뭐예요? 하나는 밖에서 구하지 마라. 밖에서 구하지 마라. 두 번째로는 마음을 바로 하자. 뒤바뀐 마음을 바로 하자. 이 두 가지가 오늘 입재 법문의 핵심이니까, 49일 동안 이 두 가지를 명심해서 49일 동안에 늘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요즘에 추앙이라는 말을 많이 쓰대요.- 부모님을 추모하고 추앙해서 부처님 가피가 늘 함께하는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49재] 6월 10일 49재 법문
종범스님 2022-06-10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 生身太空塵 태어난 몸은 허공의 티끌 한 점이고 생신태공진이요識心夢念想 생각은 꿈꾸는 몽상과 다름없네! 식심몽념상하여浮雲自去來 뜬구름이 덧없이 오고 가듯 부운이 자거래하니身識如是相 몸과 생각의 모습도 그러하네!신식이 여시상이로다나무아미타불 돌아가신 분을 극락세계로 모시는 것이 재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재는 어떻게 올리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몸, 움직이는 생각이 있고, 석가모니가 깨달은 몸, 석가모니가 이룩한 지혜, 그게 이제 극락세계는 깨달은 몸이 도달한 곳이고 이룩한 지혜로 머무는 곳인데요. 지금 한문으로 읽은 내용이 생신(生身)은, 날 생자, 몸 신자, 이 세상에 태어난 몸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청정법신, 아무 데도 물들지 않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변함이 없는, 물듦이 없고 변함이 없는 그 몸을 깨달았는데 그걸 청정법신이라고 한다. 법 법자, 몸 신자. 이 세상에 태어난 몸을 인연소생신, 인연으로 태어났다. 이 청정법신에다가 인연소생 세상에 태어난 몸을 비교를 해보니까, 이 태어난 몸은 태공진(太空塵)이라, 저 태허공에, 넓고 넓은 허공에 한 점의 티끌과 같다. 청정법신은 끝없는 허공과 같다. 이런 몸이거든요. 평생을 세상에서 움직인 생각은 그 청정법신을 깨달아서 이룩한 지혜, 생신이 법신이 되고, 생각이 지혜가 되는 걸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그 지혜는 보광명지(普光明智), 넓을 보, 빛 광, 밝을 명, 지혜 지, 넓게 빛나고 밝은 지혜, 보광명지. 그 보광명지에다가 알 식, 마음 심(識心), 생각하는 마음을 비교해 보니까 몽념상(夢念想)이라. 꿈의 꿈꾸는 생각과 같다. 생각은 꿈과 같고, 우리 태어난 몸은 허공에 한점 티끌과 같다. 그래서 그 모습이 부운이 자거래(浮雲自去來)하니, 구름이 스스로 스스로 가니 이 태어난 몸과 생각하는 생각이 마치 그와 같다. 그러면 극락세계에 가려면 이렇게 뜬구름과 같고, 허공에 티끌과 같고, 꿈꾸는 생각과 같은 그런 걸로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청정법신, 부처님이 이룩한 보광명지 그 세계로 가는 것이다. 이런 얘기죠. 一切凡夫 妄想執著 일체범부는 망상집착으로住於世間 生滅相續 주어세간하야 생멸이 상속하고三世諸佛 般若觀照 삼세제불은 반야관조到於彼岸 眞如法界 도어피안하니 진여법계요淸淨法界 常住法界 청정법계요 상주법계이니 壽光無量 福德具足 수광이 무량하고 복덕이 구족하며神通自在 極樂世界신통이 자재하니 극락세계로다나무아미타불 그럼 뭘 깨달았나.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이 마음이라는 게 불가사이하고, 생각할수록 무량공덕이라, 한량없는 공덕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보통 사람의 마음이 있고, 도를 많이 닦아서 얻은 마음이 있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서, 그 완전한 깨달음을 대각이라고 하는데, 큰 대자, 깨달음, 그 대각을 얻은 마음이 있고, 세상살이에 골몰하는 마음이 있고, 인연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타나요, 이 마음이라는 게. 그래서 세상살이에 골몰하는 마음을 범부심이라 이러고, 도를 닦아가는 마음을 보살심이라 하고, 대각을 이룬 부처님의 마음을 두 마디로 설명하면 자성청정심, 신통광명심. 부처님은 그 마음의 근본 바탕, 자성, 그 근본 바탕에 티끌 한 점도 붓지 않은 청정한 모습으로 왔다. 그래서 이게 자성청정심이고. 그 자성청정심을 얻으면 어떻게 되냐. 거기서 한량없는 신통과 광명이 나온다. 이걸 신통광명심이라고 해요. 부처님의 마음은 자성청정심, 신통광명심이고, 도를 닦아가는 보살의 마음은 보살심, 범부심, 제불심. 보살의 마음은 반야관조(般若觀照), 반야는 지혜인데, 지혜가 하는 일은 볼 관자, 비출 조자, 보는 거예요.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을 보고, 생각이 일어나는 걸 보고, 생각이 사라지는 걸 다 봐요. 이걸 반야관조심이라고 해요. 반야관조. 그럼 범부의 마음은 뭐냐. 보는 대로 취하고 집착을 해요. 보는 대로 얻으려고 하고, 취하려고 하고, 가지려고 하고, 가진 것은 소유하려고 하고, 그래서 이걸 망상집착심이라고 해요. 허망한 생각으로 집착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일체범부는 망상집착으로(一切凡夫 妄想執著), 주어세간(住於世間)하니, 세간이라고 하는 것은 낳다 죽었다 하는 공간이에요. 범부가 머무는 것은 낳다 죽었다하는 세간 공간에 머문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생멸이 상속이라(生滅相續).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된다 이 말이죠. 생멸 상속. 근데 삼세제불은(三世諸佛) 보살행을 통해서 반야를 관조(般若觀照)하니, 망상집착을 하는 게 아니라 반야로 관조를 하니까 모든 지 딱 보면 취할 게 하나도 없어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걸 청정법계(淸淨法界)라. 망상 집착을 하면 생로병사 생멸상속인데, 반야로 관조를 하면 청정법계다. 뭐든지 딱 보면 두려울 게 없어요. 색즉시공이에요. 딱 보니 죽음이 없는데요. 딱 보면 태어나는 게 없어요. 그런데 망상 집착을 하면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끝없이 생멸이 상속을 해요. 보면 없다. 그러면 없는 것 때문에 어떡하냐. 없는 것도 없는 거예요. 없는 거를 자세히 보면 없는 게 없어요. 있는 걸 자세히 보면 있는 게 없어요. 이게 반야관조에요. 그래서 반야관조하면 모든 것에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데, 망상집착하면 전부 생겼다 사라지고 탐나고 두렵고 그런 거예요. 취한 거 버리고. 딱 보면 취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고, 무서울 것 없고. 그래서 그걸 세간이라고 하지 않고 피안(彼岸)이라고, 건너 공간이다. 피안. 보면 피안인데 집착하면 생사에요. 뭐든지 딱 보면 무서울 거 없어요. 탐 날 거 없어요. 집착하면 무섭고 탐나고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은 이 지혜로 봤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어떻게 되냐. 도어피안(到於彼岸)이라, 피안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그 피안이 어떤 세계인가. 진여법계(眞如法界)다, 참 그대로 법의 세계다. 진여법계. 피안이다. 청정법계(淸淨法界)다. 뭐가 변하고 물들고 그게 아니라 그대로 청정한 법계다. 상주법계(常住法界)다. 항상 상자, 머물 주자. 항상 하는 상주. 그리고 거기는 수광이 무량하고(壽光無量), 수명과 광명이 한량이 없고. 청정법계는 수명이 없어요. 백 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천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만년 수명이 있는 게 아니고, 저 허공과 같이 무량해요, 수명이. 수명이 무량하고. 또 복덕이 구족하고(福德具足), 좋은 게 복덕인데 좋은 게 한량없이 많아요. 그리고 신통이 자재하고(神通自在), 신통이 자재라는 것은 보는 지혜로 딱 보면 여기서 움직이지 않고 가고 싶은 데 다 가는 게 그게 신통이에요. 비행기 타고 화성이나 달나라에 가는 게 아니라 지혜로 간단 말이죠. 지혜로 딱 보면 이곳을 움직이지 않고 저곳에 가. 그런 것을 신통이라고 해요. 그래서 신통이 자재하니 그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한다. 여기까지 아까 읽은 것이거든요. 非識所能識 생각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니고 비식소능식이며 亦非心境界 또한 마음의 대상도 아니다. 역비심경계이니其性本淸淨 그 신령한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기성이 본청정하야開示諸群生 중생에게 길을 열어 깨우친다. 개시제군생이로다(화엄경, 보살문명품)나무아미타불 이 마음이라는 건 불가사이하다. 왜 불가사이하냐. 그냥 망상집착을 가지고 탐내고 화내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해도 그 근심 걱정하는 속에 자성청정심이 그대로 들어있어요. 그래서 불가사의하다는 거예요. 아주 희한해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금방 화냈다가 금방 또 웃을 수가 있는 거예요. 화내는 속에도 그 본래 깨끗한 마음이 그냥 들어있어요. 즐거워하는 속에도 본래 깨끗한 마음이 그냥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거를 수연심(隨緣心) 불변심, 수연이라는 건 따를 수 자, 인연 연자, 인연을 따르는 마음이 있다. 인연 따르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오면 사람 보고, 하늘이 열리면 하늘 보고, 어두울 때는 어두운 거 보고, 밝을 때는 밝은 거 보고 다 보는 거예요. 그걸 수연심이라고 하거든요. 인연 따른 마음, 근데 아무리 어두운 걸 봐도 마음 청정심이 어두워지질 않아요. 아무리 밝은 걸 봐도 마음 청정심이 밝아지지 않아요. 사람을 봐도 마음 그 청정심이 사람 되는 게 아니에요. 나무를 봐도 그 청정심이 나무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걸 불변심이라고 해요. 하나도 변함이 없는 상태로 모든 거를 다 보고 모든 걸 다 판단하니까 수연심 불변심이라고 한다. 이 사바세계를 세간법이라고 하는데, 이 세간법에 근심걱정을 하다가도 극락세계에 딱 가면 극락세계 그대로 담아요. 마음이 사바세계 된 게 아니고 세간법이 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해인삼매라는 말로 이제 멋지게 가르쳤는데, 해인이라는 건 바다 해자, 도장 인자인데, 바다가 있고 거기 비춰진 그림자가 있단 말이에요. 그 그림자를 하얀 종이에 도장 찍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비유로 도장 인자를 쓰는데, 바다라는 건 물이에요, 해수. 바닷물은 그냥 바닷물일 뿐이야. 그런데 이 바닷물에 비추어지는 그림자는 아주 다양하다. 나무도 비치고 사람도 비치고 구름도 비치고 해도 비치고 달도 비치고 어두운 것도 비치고, 밝은 것도 비치고. 이걸 해인이라고 해요. 아무리 해인의 모습이 다종다양해도 해수는 항상 바닷물인 거예요. 그냥. 밤중이 되었다고 바닷물이 밤중이 된 게 아니고요, 햇빛이 올라왔다고 해도 바닷물이 햇빛 된 게 아니고 그냥 바닷물 그대로 변함이 없는 상태로 온갖 것이 나타나는 것마다 다 비친다. 이걸 불변수연이라, 이것이 해인삼매다. 이렇게 가르쳐요. 이것도 신통인 게 어째서 신통이냐. 바다에 높은 산이 비췄다고 해서 바닷물이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산 정상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대로 바닷속을 보니 높은 산이 바닷물 속에 환히 비춘단 말이에요. 이게 신통이에요. 산이 제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바닷속에 비치고 물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지 않고 산 그림자가 바닷속에 다 비친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아무리 세간 속에서 근심 걱정하고 애를 태우고 살았어도 극락세계에 가면 이 세간법은 없고 그대로 극락세계에 그냥 머물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청정법신을 깨닫고, 보광명지를 성취하고 극락세계에 노니는데, 일체 모든 사람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서 이 세상에서 근심 걱정하는 사람들도 극락세계로 오면 그날로 극락세계에서 복을 받는 거지, 산 보고 왔다고 그래서 마음이 산 된 게 아니고, 싸우고 갔다고 마음이 싸우는 게 아니다 이거죠. 그런데 이것은 역비심경계(亦非心境界)라, 자성청정심 보광명지는 마음이 저 밖에서 알아내고 밖에 가서 찾는 게 아니다. 있는 장소가 없어요. 바닷물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처럼. 기성이 본천정(其性本淸淨)하야, 마음 자성청정이 본래로 청정해서, 개시제군생(開示諸群生)이라, 여러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 청정의 길, 복덕의 길을 열어서 인도한다. 그러니까 극락세계를 인도하는 삼세제불의 인도받을 수 있는 자성심을 일체범부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반야관조, 반야로 딱 보는 행위를 통해서 갔는데, 오늘의 영가는 반야관조행을 닦을 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간다 이거에요. 그 인도가 반야용선이라고 그래요. 반야의 배. 용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데 하늘에 올라가듯이 반야라는 보이지 않는데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배다. 반야용선을 타고 간다. 믿으면 바로 가는데 안 믿으면 갈 수 없어요. 못 가. 아무리 이렇게 법문을 해도 아무도 못 가는 거예요. 그게 또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가라고 법문하지 못 가라고 법문 하는 거 아닌데 아무나 갈 수 없는 거에요. 그 마음은 불가사이 한 거지요. 이렇게 공덕을 드리고, 아들 딸 드리고 가족들이 손주 손녀가 인연을 짓는데 안 믿을 이는 없죠. 안 믿을 이는 없어요. 그렇게 잘 믿으시고, 반야용선의 인도를 잘 받아서 극락세계 왕생하도록 하는 게 재를 지내는 뜻입니다. 今日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금일 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今日當靈 直往樂土 금일영가 직왕낙토하야無盡福樂 無盡受用무진복락을 무진수용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오늘 영가께서는 바로 낙토에 가서, 직왕낙토(直往樂土)라, 낙토는 극락세계를 즐거운 락자, 흑 토자, 낙토라고 그래요. 극락세계를 줄이면 낙토. 바로 극락세계 낙토에 가셔서 무진복락(無盡福樂)을, 없을 무, 다할 진, 다함없는 끝없는 복과 즐거움을 무진수용(無盡受用)하십시오. 끝없이 끝없이 수용은, 받을 수자, 쓸 용자, 받는다는 말인데, 끝없이 끝없이 받으십시오. 이렇게 해서 오늘 법문을 마쳤습니다.